작성자 군산시립교향악단
작성일21.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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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스타코비치 축전서곡
1953년 3월 스탈린의 죽음은 구소련을 충격에 빠뜨렸지만, 당시의 작곡가들, 극작가들, 시인들 등을 억누르던 스탈린의 압제적인 정책에서 예술가들은 해방될 수 있었다. 스탈린 정권 하에서 고통을 받았던 예술가들 중에서도 쇼스타코비치와 프로코피에프의 이름은 단연 으뜸이었다. 스탈린 정권의 문화부 대변인 안드레이 츠다노프는 이들 작곡가들을 ‘형식주의의 범죄를 저지른 작곡가’라고 비난했고, 그로 인해 이들은 많은 불이익을 당해야 했다.
스탈린이 죽고, 47세의 쇼스타코비치는 서랍 속에 꽁꽁 숨겨두었던 악보들을 다시 세상에 꺼내놓기 시작한다. 그로부터 1~2년 후 소련이 서방 세계와 문화 교류를 위한 프로그램을 시작했을 때, 많은 소련과 미국의 음악인들은 서로의 나라를 방문할 수 있었고 빈도는 점차 잦아졌다. 1953년 쇼스타코비치가 〈교향곡 10번〉을 초연했을 무렵, 그는 1917년 일어났던 러시아 10월 혁명의 37주년을 맞는 기념 콘서트를 위한 짤막한 오케스트라 곡을 요청받는다. 그렇게 해서 〈축전 서곡〉은 탄생하게 된다.
쇼스타코비치가 자신의 삶과 작품에 대해 남긴 책인 《증언: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회고록》은 쇼스타코비치가 죽고 나서 출판되었다. 그러나 이 책은 출판된 즉시 진위여부의 논란에 휩싸였다. 많은 학자들은 쇼스타코비치의 대필자이자 이 책의 편집자였던 솔로몬 폴코프가 많은 이야기들을 날조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스탈린 정권 아래 쇼스타코비치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축전 서곡〉을 통해 쇼스타코비치의 진면목을 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쇼스타코비치의 친구 레프 레베딘스키가 1954년 가을의 어느 날 쇼스타코비치의 아파트에서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볼쇼이 극장의 한 지휘자가 방문을 했다고 한다. 그는 쇼스타코비치에게 말하길, 알 수 없는 정치적인 모략과 이상한 관료들 때문에 오케스트라 연주단은 ‘10월 혁명 기념 연주회’에서 연주할 새 작품이 필요하다고 했고, 주어진 시간은 불과 석 달이라고 하였다. 쇼스타코비치는 친구를 옆에 앉혀놓고 바로 작곡을 시작했다. 레베딘스키는 이렇게 말한다. “그가 곡을 쓰는 속도는 정말이지 놀라웠다. 게다가, 그가 가벼운 음악을 쓸 때에는 심지어 말도 했고, 농담도 하면서 동시에 작곡을 했다. 전설적인 모차르트처럼 말이다. 쇼스타코비치는 키득거리면서도 작품은 계속 진행했고, 음악은 쓰이고 있었다.”
음악이 장대한 축전의 팡파르로 시작하지만, 이 곡에는 어떤 특별한 영웅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 곡은 연주회용 서곡으로 쓰인 것이지, 어떤 극의 서곡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이 곡의 축전적인 무드는 완전히 러시아적인 제스처로 이루어진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시작부분에서 반짝반짝 빛이 나는 금관악기의 화려함은 이 곡의 축전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다. 장대함과 서정적임, 유희적인 부분들이 서로 교대하면서 등장하다가 금관악기의 시작 패시지가 다시 등장할 때는 그 장대함이 더욱 고조된다.
쇼스타코비치 피아노협주곡 2번
쇼스타코비치는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를 위해 각각 2개의 협주곡을 남겼다. 피아노 협주곡 1번, 2번 모두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작품인데 미묘하게 서로 다른 점이 감지된다. 1번은 작곡가가 20대 후반일 때 작곡한 재기발랄한 곡으로, 솔로 트럼펫이 피아노와 거의 대등한 독주악기로 활용된다. 즉 실제적으로는 피아노와 트럼펫을 위한 2중 협주곡인 셈이다. 2번은 작곡가가 51세에 쓴 곡으로 아들 막심 쇼스타코비치의 19세 생일을 맞아 작곡한 일종의 음악 선물이다. 막심이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졸업을 기해 협주곡 2번의 협연 피아니스트로서 초연을 했고 곡은 수순대로 아들에게 헌정되었다. 작곡자는 아버지이만 실제로 곡의 ‘주인’은 아들인 셈이다.
쇼스타코비치는 피아노 협주곡 1, 2번 모두 녹음을 남겼는데 그가 얼마나 뛰어난 감각의 피아니스트였는지 알게 해주는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협주곡 전곡은 안무가 케네스 맥밀란에 의해 ‘콘체르토’라는 발레로 재탄생하기도 했다. 1악장은 음악 애니메이션의 대명사 ‘판타지아’의 2000년 버전에 배경음악으로 선택되기도 했다. 이 곡은 언제나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곡이며, 고뇌하고 울분을 터뜨리는 쇼스타코비치의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1악장 Allegro(빠르게)는 목관의 짧은 행진곡 풍의 도입에 곧 피아노가 활달한 제1주제를 연주한다. 피아노 협주곡 2번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많은 부분에 있어 오른손과 왼손이 옥타브 간격으로 동일한 악구를 연주하다는 점이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의 피아노 도입의 방식을 떠올리면 좋을 것이다. 마치 슈베르트의 4손을 위한 피아노 듀오 곡에서 퍼스트주자가 연주하는 스타일 같기도 하다. 피아노는 하농이나 바이엘 교본 입문 때가 아니고서는 기본적으로 오른손과 왼손이 다른 악구를 연주하는 악기이다. 그러나 쇼스타코비치는 낭만주의 피아노 협주곡의 과시욕을 배제하고 마치 2인3각 달리기처럼 오른손과 왼손을 하나의 악구로 묶었다. 피아노를 단선율 악기처럼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피아노는 로시니 <윌리엄 텔’> 서곡의 기마 부분을 연상케 하는 리드미컬한 악구를 연주하다가도 서정적이고 부드러운 단조의 멜로디를 노래하기도 한다. 소나타 형식의 발전부에 해당하는 부분은 일종의 침공이다. 꼬마병정에게 빌런(villain, 악당)의 악행이 들이닥치는 것처럼 들린다. 일촉즉발의 위기 속에서 드디어 꼬마병정이 빌런을 물리치는 듯 한 승리의 개가가 울려 퍼진다. 이 부분만큼은 피아노가 빠른 분산화음을 연주하는 전형적인 낭만파 피아니즘을 보여준다. 곡은 결국 시작하던 행진곡 분위기 그대로 유쾌하게 끝맺는다. 이 곡은 음악 애니메이션 ‘판타지아 2000’에도 삽입되어 영화 팬들에게도 친숙한 곡이다.
2악장 Andante(걸음거리의 속도로 느리게)은 쇼스타코비치가 만든 피아노 레퍼터리 중에서도 가장 아련하고 감성적인 곡이다. 현악의 멜랑콜리한 도입에 이끌려 피아노가 투명한 음률로 기품 있게 등장한다. 마치 베토벤 <월광 소나타> 1악장이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2악장 중간부분처럼 3잇단음표의 유려한 흐름으로 전개된다. 조금 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2악장의 분위기도 감지된다. 1악장이 장난치는 아들 막심을 묘사한 것이라면 2악장에서 느껴지는 정서는 산전수전 다 겪은 아버지의 회상 그리고 인생의 덧없음이다. 쇼스타코비치 스스로 2번은 ‘가볍고 진지하지 않은 작품’으로 언급했지만 2악장만큼은 예외이다.
3악장 Allegro(빠르게)은 전악장에서 쉼 없이 연결되는데 아이들의 현기증 나는 놀이판처럼 느껴진다. 피아노는 1악장의 ‘2인 3각 달리기’를 연상시키듯 양손이 옥타브차이로 같은 악구를 연주하는데 그것이 더욱 철저히 강화되어 있다. 3악장은 거의 전곡에 걸쳐 옥타브 연주를 유지한다. 오케스트라가 끼어들며 연주하는 행진곡은 7/8박자라는 보기 드문 홀수 박자로, 청중의 리듬감각을 교란시킨다. 지겹기로 악명을 떨치는 ‘손가락 체조’ 교본인 하농을 패러디 한 부분은 유머스럽고 심지어는 통쾌하기까지 하다. 후반에는 오케스트라에 스네어 드럼(작은 북)까지 가세하여 흥을 돋구고 곡은 절정으로 치닫으며 명쾌하게 종결한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9번
쇼스타코비치의 삶은 잔인한 독재자 스탈린의 공포와 협박으로 늘 얼룩져있다. 그는 오페라 <므첸스크의 레이디 맥베스> 때문에 서슬 퍼런 숙청의 위기에 놓였지만 교향곡 5번으로 단번에 당과 인민의 영웅으로 추켜 세워졌다. 구소련에서 그의 작곡가로서의 위상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에 의해 포위되었던 도시 레닌그라드(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참혹함 속에서 절정을 맞이했다. 이 때 작곡된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는 압도적인 스케일로 나치와 구소련의 전쟁드라마를 음악으로 생생하게 표현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바야흐로 나치의 항복으로 끝나고 스탈린은 쇼스타코비치로부터 승리를 자축하는 거창한 교향곡을 기대했다. 독재자가 좋아하는 음악은 서로 엇비슷하다. 히틀러가 바그너의 웅장한 음악을 숭배했던 것처럼 스탈린의 음악 취향은 그저 쉽고 겉만 요란한 행사용 음악이나 다를 바 없었다. 게다가 쇼스타코비치의 신작 교향곡에 돌아오는 번호는 9번이었다. 베토벤 교향곡 <합창>이래 심포니스트에게 하나의 숙명처럼 되어버린 번호이다. 스탈린은 베토벤 9번에 견줄만한 위대한 교향곡을 작곡가에게서 뽑아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9번은 하이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 듯한 음악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전곡은 25분 남짓 되는 짧은 길이에다가 전체적으로 유머와 재기 발랄한 기조를 지니고 있다. 스탈린은 작곡가가 자신에게 예술로서 반항을 하는 것으로 느꼈고 이 곡은 ‘형식주의자 비판’이 시작된 1948년 금지되었다. 쇼스타코비치는 다시 움츠러들었고 스탈린이 죽기 전까지 교향곡을 단 한 곡도 쓰지 않았다. 그저 독재자에게 아부하는 시늉으로 ‘베를린의 함락’을 비롯한 프로파간다 영화음악이나 이른바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충실한 합창음악 ‘숲의 노래’를 작곡했다. 교향곡 10번은 1953년 스탈린의 죽음 이후에 비로소 나오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스탈린이 죽은 날짜는 쇼스타코비치와 함께 ‘형식주의자’로 당의 비판을 받았던 프로코피에프의 사망일과 동일하다.
1악장 Allegro(빠르게)는 경쾌한 발걸음으로 시작한다. 겉보기에는 신고전주의 음악처럼 들리지만 쇼스타코비치 특유의 잘못된 음표(wrong note)가 감상자의 허를 찌르고 그의 ‘지문’과도 같은 특징적 오케스트레이션은 여전히 잘 드러난다. 부주제를 선포하는 트롬본의 신호는 소나타 형식의 재현부에서 혼란스러운 음악 속에서도 계속 같은 신호를 보낸다. 누가 뭐라고 해도 늘 같은 말만 반복하는 답답한 인간상을 느끼게 된다. 혹시 꽉 막힌 독재자를 풍자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닐까?
Moderato(중간 빠르기로)의 2악장은 개시악장과 완전히 대비되는 정서를 보여준다. 전반적으로 어두운 느낌이 지배적이지만 중립적인 모호함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트럼펫, 트롬본, 팀파니, 타악기처럼 강하고 무거운 악기군이 배제되어 실내악적인 울림을 추구한다. 마지막의 피콜로 솔로는 적막감의 극치를 보여준다.
3악장 Presto(매우 빠르게)와 4악장 Largo(매우 느리게)는 쉼 없이 연달아 연주되며 그대로 5악장까지 이어진다. 3악장은 현기증 나는 속도로 유희의 극단을 달리고 4악장은 무겁고 매우 심각한 정서를 표방한다. 3, 4악장은 각각 무소르그스키 <전람회의 그림>의 어지러운 7곡 ‘리모쥬의 시장’과 암석 같은 8곡 ‘카타콤’에 대응되는 것 같다. 트롬본과 튜바의 위압적인 울림과 이에 대비되는 바순의 한탄하는 듯한 솔로가 교대되는 4악장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 2악장의 아이디어를 채용한 듯한 느낌이다. 저승의 신이 내리치는 불호령과 오르페우스의 간청이 팽팽한 긴장감을 형성하는 장면처럼.
5악장 Allegretto(조금 빠르게)는 4악장의 바순 솔로가 그대로 이어지면서 시작하며 1악장의 경쾌한 분위기로 다시 되돌아간다. 중반에는 갑자기 템포를 빠르게 조이다가 처음의 바순의 주제가 오케스트라 총주를 통해 개선장군의 위엄 있는 행진으로 변용된다. 속도를 Allegro(빠르게)로 올인 후반부는 마치 흥겨운 서커스 음악을 연상시킨다. 풍선이 터지듯 느닷없이 곡을 끝내는 작곡가의 ‘촉’이 예사가 아니다.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9번을 거시적으로 보면 홀수 악장은 즐거운 분위기이고 짝수 악장은 침울한 무드를 지닌다. 이 교향곡은 신고전주의를 기저에 깔고 있다는 점에서 프로코피에프의 교향곡 1번 <고전>에 잘 대응된다. 두 곡을 한 공연에서 비교해서 듣는 것은 사뭇 흥미로운 체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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