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군산시립교향악단
작성일25.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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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특유의 유머와 위트가 드러나 있는곡 [피가로의 결혼]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은 전 4막의 희극 오페라이다. 피에르오귀스탱 보마르셰의 희곡 미친 날, 또는 피가로의 결혼이라는 희곡을 대본을 썼다. 역사상 최고의 오페라로 선정된 이 작품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며 사람들이 가장 즐거워하는 작품이다. 스페인 세비야 인근 알마비바 백작의 저택을 배경으로 남장 여자, 여장 남자가 나오는가 하면 섹시한 하녀, 정력이 넘치는 주인 나리, 그리고 친자 확인 소동이 펼쳐지는 떠들썩한 익살극이다. 세비야는 수없이 많은 오페라의 무대이기도 하다. 로시니의 유명오페라 세빌리야의 이발사 가 전편이며,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이 후편이다. 이탈리아 희가극이 빈에서 다시 시작되었는데, 무척 인기가 좋습니다. 시인은 아바테 다 폰테라는 사람인데, 제게 대본을 써줄 거라고 약속을 했습니다. 모차르트는 1783년 아버지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베네토 출신의 전직 사제이자 훗날 시인이 되는 다 폰테는 모차르트와 콤비를 이루어 오페라 역상사 가장 완벽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그 결과 세 편의 작품이 탄생했는데, 피가로의 결혼 1786년, 돈조반니 1789년 여자는 다 그래 1790년 이 바로 그것이다. 세 작품 모두 인간의 육체적 사랑의 측면을 다루지만 오페라에서 들려주는 슬고통의 색채는 제각각이다. 피가로의 결혼은 일종의 가정 코미디로, 한 집안에서 일어나느 ㄴ소동을 달고 있다. 보마르셰의 악명 높은 사회풍 자극을 오페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이는 모차르트였다. 온갖 장애물 때문에 대보 ㄴ작업에 시간이 걸렸지만 다 폰테의 말에 의하면 모차르트는 겨우 6주 만에 곡을 다 썼다. 종종 삭제되는 4막의 아리아 두곡을 제외하면 나머지 부분은 쓸데없는 곳이 하나도 없다 피가로의 결혼은 서구 예술에서 영원히 찬란하게 빛날 작품이다.
주페 경기병 서곡
주페가 차르다슈 등 헝가리 춤곡 선율을 사용해서 1866년에 만든 희가극으로 빈의 시인 코스타의 대본에 의한 군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서곡은 극중에 나오는 다섯 개의 주요 테마들을 발췌해서 세도막 형식으로 엮은 것이다. 트럼펫과 호른이 신호 나팔처럼 드높이 울리고 트롬본이 이에 답한다. 뒤이은 행진곡은 말발굽 소리를 연상시키면서 경기병의 행진을 묘사한다. 전쟁에서 죽은 전우를 애도하는 듯한 조용한 단조의 헝가리풍 선율이 첼로와 바이올린으로 연주되며, 다시 경쾌한 핸진곡과 장대한 클라이맥스로 마무리된다. 이곡은 3부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갈로파풍의 경쾌한 핸진곡으로 시작되는 전반부에 이어 용사의 죽음을 애도하는 듯한 단조로 바뀐 중간부를 지난 뒤 다시 처음과 같은 행진곡푸이 재현되면서 화려하게 끝이 난다. 1866. 3. 21일에 초연되여 대본은 카를 코스타의 작품으로 헝가리의 차르다슈나 그 밖의 것을 사용한 화려한 군인의 이야기이다. 서곡은 극중의 주요가락을 다섯 종류 취하여 구성한 것이다. 곡은 용감한 경기벼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암시하는 트럼펫과 호른의 유니즌에 의해 전주가 나오고 경기병의 갤럽풍이 이어진다. 차차 빨리 진군하는 기병의 모습이 묘사되고 곡은 단조로 바뀌어 중간부로 들어간다. 이윽고 최초의 행진곡이 관현악 충주로 힘차게 재현되는 화려한 코다가 됨.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5번은 나폴레옹이 오스트리아를 침략했던 1809년에 완성된 작품이다. 2악장 어딘가에 베토벤은 “오스트리아가 나폴레옹에게 대가를 치르고 있다”라는 비통한 문구를 적어놓았다. 그렇다고 이 협주곡을 따라다니는 ‘황제(Emperor)’라는 명칭이 나폴레옹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면 대단한 착각이다. 교향곡 제3번 ‘에로이카’의 일화를 떠올려보자. 공화주의자였던 베토벤은 시민혁명의 정신을 배신하고 ‘황제’로 등극한 나폴레옹에게 배신감을 느끼며 그에 대한 헌정사를 적은 악보 표지를 찢어버린 전력이 있다. 사실 ‘황제’라는 명칭은 베토벤이 직접 지은 것이 아닐뿐더러, 그의 작품 의도와도 무관하다. 첫 악장, 그리고 마지막 악장의 웅장하고 당당한 피날레에 감동한 영국 청중들이 처음 ‘황제 협주곡’이라는 별명으로 부르기 시작하면서 그대로 정착해 버렸다. 이 별칭에 대한 음악학자들의 시선은 그리 곱지만은 않다. 메이너드 솔로몬은 “프랑스인과 영국인들에 의해 어울리지도 않는 별명이 붙어버린 곡”이라 통탄했고, 얀 카이에르스는 이런 식의 별명이 “저급한 취향” 일 뿐 아니라 베토벤을 진부한 의미에 억지로 끼워 맞추면서 그의 특별한 성과와 개혁을 무시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1악장 : 무려 20여 분 규모의 장대하면서도 진취적인 악장으로 관현악 합주에 이은 피아노 카덴차로 시작되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피아노 카덴차 독주 이후 전체 악장은 오케스트라와 피아노가 제1주제와 제2주제를 서로 번갈아 주고받으며 발전시키는 변증법적 형태로 진행된다. 코다는 오케스트라가 제1주제를 제시하며 클라이맥스로 이끌며 곡을 마무리한다.
2악장 : 1악장과 완전히 다른 온화한 분위기로, 주제조차 약음기를 낀 바이올린이 조용히 던져놓는다. 조용하게 잦아드는 오케스트라 배경 위로 피아노 독주는 다소 몽환적이면서도 즉흥적인 성격을 띤다. 폭군의 침략으로 처참하게 무너진 풍경을 곱씹은 피아노는 반격과 쇄신을 약속하며 미래에 해당되는 다음 악장의 주제를 암시하며 멈춤 없이 바로 3악장으로 들어간다.
3악장 : 1악장의 웅대한 분위기로 귀환한 3악장에서는 2악장 마지막에 암시로 그친 주제를 완전체로 드러내며 시작한다. 피아노와 관현악이 개선 행진곡에 가까운 춤곡 풍의 주요 주제를 주고받는 변증법적 유희를 재개한다. 이 주제를 동기 삼아 피아노와 팀파니가 함께 조용히 카덴차를 음미한 뒤 곡은 웅대한 결말로 끝난다.
모차르트 장난감 교향곡
내용이 무겁지 않고 현악합주에 새소리와 장난감 악기를 곁들여 사용한 데서 이와 같은 이름이 붙었으며, 음악 자체는 교향곡이라기보다는 당시 유행하고 있던 오락음악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이 작품은 1770~1780년대에는 작곡자가 확실하지 않아 여러 작곡자명과 제명으로 알려졌다고 한다. 장난감 교향곡은 오랜 동안 하이든의 작품으로 알려져 왔으나 최근에 이르러 음악 학자 시미트에 의해 잘츠부르크 대사교의 궁정음악가였던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의 작품임이 확인되었다. 다시 말하면 모차르트 아버지인 레오폴트 모차르트가 작곡한 곡을 출판사에서 임의로 하이든의 이름으로 출판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는 레오폴트 모차르트 보다 하이드느이 이름으로 악보가 출판되는 것이 출판사 측으로서는 더 유리했기 때문이다. 레오폴트 모차르트는 엄격한 교육을 받은 가문에서 태어난 왕실 음악가 이며 그의 아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를 천재음악가로 만드는데 온 힘을 동원하여 뜻을 이룬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였다. 곡은 연주 시간10분 미만의 단순한 3악장 구성을 취하며 현 4부외에 뻐꾸기, 나이팅게일, 톱니바퀴 등 장난감 소리가 가미된 사랑스런 작품이다. 어린이 용으로 즐겁고 쾌활하게 다루었지만 어른들도 이 곡을 즐겨 애창하게 되어 이제는 표제만 장난감 교향곡 이지 그 실제의 내용으로는 그 범주를 넘어선다고 보아야 한다.
새소리, 나무토막으로 만든 장난감들, 뻐꾸기 소리등이 심심치 않게 한데 어루러진다. 이 작품의 간결한 악곡구조나 느긋한 악상은 18세기 후반에 전성을 이룬 디베르티멘토의 정신을 바탕을 두었다.
반 맥코이 아프리칸 심포니
아프리칸 심포니의 원곡은 미국의 음악 프로듀서 반 맥코이가 1974년에 발표한 앨범에 수록되어 최초 공개되었다. 반 맥코이에 의해 발표된 곡 아프리칸 심포니의 장르는 팝의 영역에 속하였지만, 전통적인 관현악의 편성으로 레코딩 되어 음원이 만들어진 작품으로, 맥코이의 음악은 기존의 팝음악에 재즈와 클래식을 융합 시킨듯한 새로운 장르로 분류되었다. 자신의 오케스트라 더 소울 시티 심포니의 연주에 의해 작곡자의 독특한 음악세계관을 표현하며 대중에게 소개된 아프리칸 심포니는 이듬해 1975년에 영화음악의 거장 헨리 맨시니가 앨범의 라스트 넘버로 아프리칸 심포니의 음원을 공개하며 다시 한 번 화제가 모았다. 이후 1977년 일본의 관악합주계의 대부 나오히로 이와이의 편곡으로 New Sounds in Brass 5집에 아프리칸 심포니를 수록하게 되며 오늘날 관악합주곡의 대표곡 중 하나로 인식하게 된다.
비제 카르멘
1875년 3월 3일 파리 오페라 코미크 극장에서 초연했다. 초연 되었다. 초연 당시 호평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많은 질타와 맹비난을 받으며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마지막 4막이 끝났을 때는 대다수의 관객들이 이미 극장을 떠났다고 한다. 여주인공 카르멘의 자유분방한 성격 탓에 비도덕적인 내용이라고 많은 질타를 받았다. 19세기 프랑스 오페라계는 지아코모 아미어베어, 카미유 생상스, 샤를 구노, 쥘 마스네 등이 주도하는 대하 드라마 성격의 그랜드 오페라와 청순가련한 여주인공을 내세운 서정극이 유행하였다. 또한 당시 프랑스에서 오페라는 지금의 극장처럼 오 ㄴ가족이 다같이 나들이를 가거나 모임을 갖는데 주로 이용하는 곳이었다. 쉬운 말로 가히 그 시대의 영화였으며, 국가별로 경쟁심도 붙은 상태였다. 그런 시기에 소수민족인 집시를 주인공으로 그것도 살인으로 막을 내리는 이런 막장 오페라는 상당한 파격이었다. 비슷한 이유로 주세페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역시 혹평을 받았다. 고급 매춘부와 부잣집 도련님의 로맨스인, 카르멘에 비해 내용이 부드런운 라트라비아타도 이런 평가를 받았는데 하물며 카르멘을 본 대중들의 생각이 어떠했는지는 주말할 나위가 없었다. 19세기 프랑스에서는 집시, 여성, 노동자가 차별의 대상이었다는 역사적 사실도 혹평에 영향을 주었다. 당시 집시는 끝없는 박해의 대상이었으며, 여성은 연약하고 수동적인 객체로 이해했다. 카르멘은 이런한 특징을 모두 안은 집시 여성이다. 게다가 19세기에는 하위 계층이 권리를 얻고자 투쟁해 부르주아 계층과 갈등이 만연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층민 집시 여성 카르멘이 차별과 불평등의 고통을 호소하며 자유를 부르짖는 오페라를 극장에 울렸으니 부르주아 관객들이 불쾌감을 나타내는 것은 불보듯 뻔했다. 카르멘은 19세기 사회 갈등 맥락과도 연결지어 해석한다. 다문화 집시, 페미니즘 여성, 경제계층 하층민, 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보기 좋다.
브람스 헝가리안 무곡
1853년 브람스가 20살에 헝가리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레메니와 연주 여행을 하면서, 헝가리 음악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점차 헝가리 무곡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869년 브람스는 16년간 모은 헝가리 집시 음악을 모아서 헝가리 무곡집 1.2권을 발표하며, 1880년에 3.4권을 발간한다. 이 책이 발간되고 나서는 같이 여행을 다녔던 레메니를 비롯한 헝가리 음악가들이 저작권 침해로 브람스를 고소하게 된다. 하지만 이 책에서 브람스 작곡이 아닌 편곡으로 소개되어서 브람스는 승소할 수 있었다. 헝가리계 프랑스 피아니스트 조르주 치프라는 7. 11. 14. 115번을 제외한 17곡을 모두 편고하여 연주한 것으로 유명하며, 이 문서의 제목인 5번은 1982년 ~ 1983년 17곡 녹음 세션 이전 1957년에 이미 편곡된 버전이 존재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치프라 사후 인터넷에서는 원본과 동일한 F샾 마이너로 쓰인 정식 편곡이 아니라, C샾 마이너로 쓰인 치프라식 기교를 더 넣은 버전이 전세계적으로 더 유명해진다. 동화 뮤지컬 브레멘 음악대에서 당나귀 부분에 나오는 음악도 이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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