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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을 중심으로 조상들의 지혜와 슬기를 재조명 해내자
작성자 ***
작성일07.04.15
조회수1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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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서 가끔 어부들이 봄철에 잡아오는, 싱싱한 생선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침이 꿀꺽 그냥 넘어 간다, 특히 파란 보리밭에서 보리 이삭이 나올 때 쯤 이면 으래 어부들 그물이나 손에 들려진 우어를 잡아 오는 날에는 예전에는 금강나루터 포구가 떠들썩 하고 주막마다 .술꾼들이 몰려 들었었다, 어부의 손에 들려진 싱싱한 고기는 겨울 내에 돈 떨어진 어부들의 서러움을 단번에 해결하고 그들이 거들먹 거리는 발 걸음은 한결 더 가볍다, 그간 겨울내내 외상값이 단번에 해결되어 막걸리 집 주모들의 웃음에는 그들을 향한 여러가지 의미와 뜻 들이 있었다.
꽁당보리가 자라서 목이 나 올 적에 갖 잡힌 우어가 연하고 부드러워서 회감으로는 제일 감칠 맛이 나는데 알맞게 만든 초장에 푸성가리를 양념해서 냄비에 집어 넣고 밥과 참기름으로 밥을 비비면 그 맛이 참 일품 이었다 .어제 울산 간절곶 등대장으로 수고 하고 있는 친구 장 명수소장과 저녁식사를 경남 울주군 서생면 포구에서 함께 먹었는데, 그 싱싱한 회의 감칠맛이 지금도 내 입가를 맴돌고 있어 걱정이다 . 이 친구는 내가 오랫만에 간다 했더니 오후 3시까지 점심을 먹지 않고 나를 기다리고 있 었 다,
어제는 집에 돌아와 저녁식사를 먹지 않았어도 지금까지 배가 든든하다. 나는 회덧밥을 무척 좋아하고 봄철이면 많이 즐기기 때문에 그간 해변에 나가면 값싸고 싱싱한 여러 가지 회를 해먹었다 .그중에는 민물에서 갖 잡은 참게나 메기 가물치 회도 먹어보면, 부드럽고 맛이 있 었 다. 그런데 어제 먹어본 해녀가 금방 바다에서 잡아온 해삼 , 전복과 바다 미역, 바 닷 속에서 막 뜯어온 해초 그 맛은 처음 먹어본 음식이지만 . 싱싱하니 더 봄 맛 느낄 수 가 있 었 다 . 특히 등대 주변에 심어놓은 유채꽃들이 노 랗게 만발하여 지나가는 길손들과 노란 꽃 속에서 우러 나오는 봄꽃의 향연은 너무도 멋이 있 었 다,
바다는 가끔 혼자서 성내기도 하지만 이렇게 날씨만 좋으면. 우리 인간에게 평화와 안식, 아름다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성난 파도를 보상하기라도 하는 듯, 오늘은 남해안의 잔잔한 파도와 하얀 물결은 보기에 너무 아름다웠다. 그런데 이런 때에는 문제가 꼭 나에게 개인적으로 생기는 것은 무얼까, 내가 아름다운 풍경을 카메라에 막 담으려고 하는데 준비를 해간 카메라가 충전이 안 되어, 사진을 많이 찍을 수 없게 되어, 이 글로 나마 정리 해보려한다 ,
어제가. 울릉도에 사는 내 친구 변 대흠 사장이, 외아들을 결혼을 시키는 날이라서 새벽 2시부터 일어나 4시간을 달려 포항 겔러 리 예식장에 다녀왔다, 우리 내외는 신혼시절에 여행을 한번 도 못해서 요지음에는 나는 아내와 여름 휴가철이 되면, 시간을 내서 열심히 하고 있다, 20 여 년 전에 울릉도에 휴가를 내외가 다녀오기로 하고 섬에 도착 하던 날, 태풍 이올라오기 때문에 집으로 그냥 돌아오려 했는데, 나와 동갑나기 이 친구 부부가 우리를 친절하게 일주도로 구경을 시켜주어 고맙다는 연락을 주고 받은 것이 게기가 되어 ,지금은 평생 형제처럼 친구가 되어 서로오고 가면서 잘 지 낸 다, 얼마전에 그가 군산에 다녀가면서. 다른지역 유지들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부터 우리는 해마다 정월 초 하루날 아침 동녘의 해를 서로 바라보면서 한해의 안부를 제일 먼저 주고 받는 나와는 막연한 친구 이다 , 초등학교 때나 .중, 고등학교를 다닐 때도 거의 수학여행을 친구들과 함께 해 본 일이 없다. 가정들이 어려워서 수학여행을 엄두도 못 내고 살았기에 다른 친구들이 여행을 가는 날 에 집에서 농사일을 돌 보던지 그냥 책을 보거나 공부를 했었다 . 그래서 한번 도 수학 여행을 못해서. 아내와 나는 결혼 이후에는 해마다 틈이 나면 둘이서 여행을 한다.
어느 때는 울릉도 ,어느 때는 백령도. 제주도, 지리산. 한라산, 태백산, 동해안, 충청도 산골, 어디고 우리 발길이 안 닿은 곳이 국내에는 거의없다. 우리내외는 .해마다 여행을 하면서, 지내기 때문에 적은 비용으로 아무데서나 숙박을 하고 지방을 무전 여행처럼 거의 다니고 해외 여행도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견문을 많이 넓히고 있다. 우리를 닮아서 그러는지 .아이들도 우리처럼 여행을 좋아하고 있다 , 그런데 여행을 하다 보니 대개는 관광지를 가게 되는데,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닿는곳보다 아직안 닿는 곳이 더 좋은곳이 많이있었다,
외진 곳으로 찾아가보면, 대개 그런 곳은 조상들의 숨결이 그대로 남아 있거나 뭍혀저 있었고,우리서민들의 생활상을피부로 느끼기 위해서 가보는 것이다. 언젠가 나는 백령도에서 패총 무덤에서 조개껍질을 직접 손으로 한주먹을 만 저 본다든지. 고 군산 장자도 에서. 무녀도에서 초분을 손으로 만 저 보고, 옛날 우리나라 의 매장 제도를 느끼는 일과 .장터마다 찾아가서 음식을 먹어보면, 밝은 앞면보다는, 이면에 숨겨진 자료들이 나를 만끽하게 반기고 있었다. 그래서 사진이나 자료를 확보하는경우가있다 요지 음 은 우리 군산지방에 왕족들과 평민에 대하여 크게 관심이 있어 열심히 자료를 살펴보거나 조사 하게나 체험을 해보려한다,
그 이유는 우리 선조 할아버지들이 금강 변에서 살아 오신지도 대략 추정하면 800~900년 전부터 살아 온 것같다 웨냐 하면 내가 30세손이고 우리손자가 전의이씨 32대손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지 음 .백제 무왕 왕능 과 함라 입점리 고분에서 발견된 금 왕 관이나. 금동제 신발들의 예를 들면 이 지방에서 살았던 왕족들과 평민들과의 관계가 궁금하고, 그들이 왕족과 평민들이 어떤 문화를 만들었으며 그들이 또한 어떻게 지냈는가를 .연구해보고 싶었다 . 우리지역 선유도에서 이순신 장군이 조정에 상소문을 작성했던 난중 일기에 대하여도 관심 이 있다.
고려 말 유학자 최치원 선생님과. 내초도 에서 생활한 과정 . 개정면 아산리 낙영 당에서 문하생들과 지내신 유적과 기록들에 대하여도, 큰 관심 거리고 금강하구의 진포대첩과 , 최무선 장군 세계 최초의 화포에 대한 자료, 발산 리 에 유적지로 남아있는 최호장군의 사당 . 장보고 와 어청도 관계. 고 군산 열도의 뱃길에 얽힌 청자 문화와 그 유물 관계 난파선이 몇척이었고 정말로 보물선은 없었는지 뚱딴지처럼 들려온 이야기들이 나의 관심사 이기도하다. 그간 우리는 우리의 찬란했던 우리 지방문화를 조명하려는 일에 게을리 했다 .아직도 산적 되어 있는 농요나. 어 가. 구전으로 내려오는 가사문학의 자료들이 점점 다 사라지기 전에 이를 복원을 해야 한다고 본다. 이지역 군산대학에서 참여 해야한다
이 일은 문화원이나. 학술 단체들 뿐만 아니라, 우리 시민들이나서서 자료를 정리해야하는 문제들이다, 우리 고장에서 살아온 조상들의 지혜를 담아 모아 보아야 한 다 , 음식에 관한 자료도 중요하다, 우리 조상들은 할머니. 어머니들의 손 끝으로 맛을 냈다, 이를 연구하여 쌀로 만든 음식들에 대하여도 하루빨리 복원을 해야 한다, 쌀 문화를 주장해온 여러 가지 소중한 자료들 이다. 나는 100 여 년 전에 벼 이삭을 지금 생각하니 무심코 버렸었다. 그것은 우리 큰집이 전의이씨 종가집이 었다, 새마을 사업으로 지붕개량을 하였었는데 초가지붕 제일 밑에서 아주 오래된 작고 메마른 벼이삭이 그곳에서 발견 된 적이 있 었 다.
그때는 생각을 못했는데 생각해보니 한세기를 지붕에서 마른체로 보낸 벼종자였다. 얼마 전에 월남에서 야생 벼를 TV로 소개해서 본적이 있다 우리가 생각할 때 벼는 논에서만 자라는 걸로 생각했는데 산에서 야생 벼 종자를 채취하여 종자로 개량하고 벼를 육종해서 오늘날 벼로 품종을 만들어 심었다하며 그 품종이 지금도 월남 땅 산속에 있었다. 우리는 조상들의 지혜를 모아서 우리지방의 우수한 유물들과 영남지방을 중심으로만 된 찬란한 신라문화와 한강 이북까지 펼쳐졌던 백제문화를 재조명 해보는 일에 깊히 생각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런 일들을 언제부터 누가 어떻게 해야 할 일들 인지. 아니면 지금 부터라도 많은 전문가들과 우리가 참여해서 해나가야 할일인지를 이아침 새벽에 곰곰이 엉뚱한 생각을 또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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