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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항근 선생님의 한겨레 기고글

작성자 ***

작성일09.01.05

조회수921

첨부파일

오늘자 한겨레 신문에 실린 회현중학교 이항근 선생님의 글입니다.
부디 군산의 교장선생님들...
그리고 교육에 관심있다는 분들이 좀 정신차려서 진정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 무엇인지를
고민할 수 있는 기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대한민국 교장 선생님들께 드립니다 / 이항근 / 2008년 1월 5일

저는 공모제 교장입니다. 교장 자격증도 없는 기간제 교장입니다. 또한 전교조 해직교사 출신이기도 합니다.

이 나라에서 교장이 된다는 일이 얼마나 많은 희생을 전제로 하는지 적어도 교사들은 잘 압니다. 모든 교사들이 교장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교단에 첫발을 딛지는 않지만 어느 순간 교장이 되겠다는 마음을 가졌을 때부터는 십수년은 많은 것들의 포기와 인내, 그리고 그 시간만큼의 복종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그 길을 걸어 오늘에 이르신 교장 선생님들의 수고로움을 저는 존중합니다. 뜻하는 교육, 뜻하는 학교의 상이 있지 않다면 갈 수 없는, 가서는 안 되는 고난의 길임이 분명합니다.

원하는 교육, 만들고 싶은 학교의 상은 있으셨겠지요. 지금 만들어 가고 계신지요. 아님 어느새 교육자로서의 영혼과 그 꿈을 잊고 자리보전과 말단 행정가 노릇에 더 몰입하시는 것은 아닌지요.

얼마 전에 저는 전문계고에 진학한 아이들을 데리고 ‘학교장과 함께하는 자아탐색 여행’이란 시간을 보냈습니다. 지리산 길을 저마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기진맥진 걸었습니다. 한 아이가 소감문 속에 이런 문구를 썼더군요. “나를 찾는 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더 무거운 배낭을 메니 마음이 참 편했다.” 전국에 첫눈이 내린 날, 유리창도 깨진 허름한 오두막집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칼잠을 잤습니다. 아침에 이불을 개면서 한 아이가 “이 친구가 이렇게 따뜻한 줄 몰랐다”고 중얼거렸습니다.

남보다 더 힘든 일로 마음이 편해지는 아이, 친구의 품이 따뜻한 줄을 비로소 알아낸 아이. 이것이 우리가 교육이라 말하는 것의 본질적 목표 아닌가요? 저는 다른 교장 선생님처럼 십수 년 그 길을 걷지도 못했고 자격증을 받는 데 필요한 집중연수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남을 배려하고 인정하는 사람을 기르는 일이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기본이고 교육자의 당연한 의무라는 것쯤은 알고 있습니다.

교장 선생님을 대신해서 아이들의 여윈 마음을 보듬어주고 따뜻한 심성을 기르는 참 좋은 선생님들이 교장 선생님의 학교에도 있겠지요. 아이들의 축복이고 교장 선생님의 축복입니다.

일제고사의 문제는 여러 교장 선생님들도 제 문제의식만큼은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선생님도 교단에 서서 천차만별 아이들의 개성과 창의성을 키우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했던 시절이 있었을 터이니까요.

아무리 하려 해도 안 되어서 결국 좌절하는 아이들에게 수시로 서열을 확인하는 것이 폭력과 고문이 아닌 어떤 말로 가능할까요. 그 아이들에게 그나마 남은 순정한 인간미를 거세하고 그것을 우리가 교육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공부를 잘하는 아이, 더 하고 싶은 아이에게 그 길을 열어주고 그 길이 도무지 맞지 않는 아이에게 다른 좋은 능력을 찾아서 가게 해 주는 일이 다양성과 수월성이라 믿고 있습니다.

우리 다음의 시대를 살아갈 어느 아이에게도 필요한 것은 자율성과 창의성이라 믿고 있습니다. 그 일을 하는 것은 교단에 서는 선생님들의 몫입니다. 교장 선생님들의 소임이라면 그런 선생님들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보장하고 지켜주는 것이 아닐까요?

그것이 진정 학교교육의 자율성을 확보하고 교장 선생님이 꿈꾸었던 이상을 실현하는 학교가 아니었나요?

저는 최근 파면과 해임이라는 모진 ‘선고’를 받은 일곱 분의 선생님 말고도 그 몫을 충실히 수행하시는 선생님들이 대한민국에는 대단히 많이 계시고, 그분들이 저마다 학교의 보배일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런 분들 중에서 그리 특별하지 않은 일곱 분의 이름이 특별히 거론되는 현실이 불편합니다. 그분들이 학생과 학부모 편이 되었다는 것만으로 형벌을 받는 현실이 개탄스럽습니다. 그분들을 아이들과 떼놓으며 “나라가 너희들과 선생님을 떼놓으라고 했다”고 말하는 교장 선생님의 모습이 슬픕니다. 아이들 편에 서지 않는 교사가 미웠듯이 교사들 편에 서지 않는 교장 선생님의 모습이 밉습니다.

우리가 있는 힘을 다해서 아이들로부터 떼놓을 교사는 성추행을 일삼거나 촌지를 밝히는, 자기 잇속을 위해서 교육을 팔고 학부모를 등치는 그런 파렴치한 교사들 아니었을까요?

그런 아이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일이 교사로서의 삶을 순식간에 망가뜨리는 몽매한 현실이 아픕니다. 일곱 분이 찬바람 부는 교문 밖에서 흘리는 눈물에 눈물이 납니다. 어쩌면 그분들의 눈물보다도 그러한 교사의 양심을 지켜주지 않는 대한민국 교장 선생님들의 처신에 눈물이 납니다. 그보다 더 아픈 눈물은 앞으로도 여전히 아이들이 획일적 일제고사에 시달리다 상처를 받고 아파하며 흘릴 눈물이고, 그것을 닦아주기 위해 또다시 몸부림쳐야 하는 수많은 양심적 교사들의 눈물입니다. 그러한 교사를 지켜주지 못하고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다시 교장 선생님들께서 인생을 바쳐 만들고 싶었던 학교의 모습을 묻습니다.


이항근 군산 회현중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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